오늘의 주제는 글쓰기의 시작, 작은불꽃 – ‘물비늘’입니다. 물비늘이라는 주제어를 가지고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함보시조.
물비늘의 춤: 기억과 추억의 파도
밝은미소 – 데빗박
어느 날이었던가, 물비늘이 반짝이는 바닷가 선착장에 앉아 있었다. 약간의 일렁이는 바람이 물비늘을 춤추게 한다. 그 순간, 나는 동생과 함께 있었다. 바다는 우리에게 엄마 품 같은 편안함을 주었고, 우리는 그 순간을 조용히 즐겼다. 바람은 가볍게 우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물결은 잔잔하게 춤을 췄다. 이 순간은 마치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말없이 그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야, 여기 너무 좋다. 엄마 품 같은 편안함, 그런 느낌이 들지 않니?” 나는 동생에게 물었다. 동생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바다만 응시했다. 그의 눈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차 안의 정적이 무겁게 느껴졌고, 나는 그 정적을 깨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참 오랫만에 어성포에 왔다 가는 거지.” 동생은 여전히 아무 말 없고, 묵묵히 운전만 했다. 어제 장례식은 그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었나 보다. 우리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이모님의 장례식을 마치고 헤어졌다. 그에게 어제는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그와의 대화는 쉽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여보, 전화 왔네.” “응, 동생이네.” 아이고 철푸덕, 핸드폰은 콘크리트 바닥 위에 떨어지고 모서리와 뒷면은 여러 줄 금이 갔다. 나는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오랫만이다…… 그래, 큰일이구나. 네가 고생이 많다. 그래, 또 연락 주렴.” 여보, 도련님이야. “그래, 어머님이 쓰러지셔서 고대병원 응급실에 계신다는데, 면회는 할 수 없고, 그래서 다시 차도가 있으면 연락 달라 했어.”
동생의 전화를 받는 순간, 뭔가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전화를 받은 것이다. 그 불길한 예감은 나를 계속 따라다녔다. 어머니의 상태가 걱정되었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동생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불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지난번 갔던 그 바닷가 선착장은 동생이 방학 때면 내려와 어머니와 함께한 추억의 장소였던 걸 어머니 장례식장에서야 알았다. 나는 동생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나누었을까? 우리는 서로의 삶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그 장소는 우리 가족의 추억이 깃든 곳이었다. 나는 그 장소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되새겼다.
지난번 ’60+빛나는 청춘 글쓰기’ 장에 앉아, 떠올랐던 그 ‘물비늘 살랑거림’의 실체도 조금씩 알아간다. 맞다, 물비늘. 그 빛나는 물결 속 이야기를 드디어 쓰게 되는구나. 이 글쓰기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는 과정은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글쓰기는 나에게 힐링의 시간이기도 하다.

아직도 칭얼대는 어린아이는 내 안에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고 있다. “어서 써! 나도 자유로워지고 싶거든.” 하고 말하는 듯하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내 안의 어린아이는 나의 일부분이며, 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것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언제나 빛나는 청춘 글쓰기 시간은 내 안의 어린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그의 아픔을 보듬고, 살갑게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네게로 이르는 길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되는 시간이다. 글쓰기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나와의 대화이자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다. 이 시간을 통해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간다.
q1: 이글을 읽고, 이글의 글감은 무엇이었을까? 당신이라면 무슨 글감으로 써보겠는가?
cafe.naver.com/thinktong-에 올립니다. 마타오세프, 니생각은 뭐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