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이야기 – 에세이글쓰기(1)
저는 ’60+ 청춘 글쓰기’ 수강생입니다. 제목은 무엇으로 할까? 여러분이 아래 글을 읽고 알려주세요~!
오늘은 에세이 분석기를 만들고 나서 작성한 두번 째 이야기입니다. 에세이 분석기는 나름 잘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적의 글쓰기를 위해 일단 글자 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눈을 뜨게 된 것도 단락의 의미였고 이 의미를 파악하는 에세이분석기를 만들었으니까요! 이 글을 분석하는데 활용했습니다. 문단을 어떻게 쓸까?
짦은 에세이지만 한번 읽어주세요. 그래야 이 글의 제목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제목없는 글은 없습니다. 댓글에 남겨 주십시요.
어느 날이었던가, 물비늘이 반짝이는 바닷가 선착장에 앉아 있었다. 약간의 일렁이는 바람이 물비늘을 춤추게 한다. 그 순간, 내 곁에는 동생과 함께 있었다. 바다는 우리에게 엄마 품 같은 편안함을 주었고, 우리는 그 순간을 조용히 즐겼다. 바람은 가볍게 우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물결은 잔잔하게 춤을 췄다. 이 순간은 마치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말없이 그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야, 여기 너무 좋다. 엄마 품 같은 편안함, 그런 느낌이 들지 않니?” 나는 동생에게 물었다. 동생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바다만 응시했다. 그의 눈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차 안의 정적이 무겁게 느껴졌고, 나는 그 정적을 깨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참 오랫만에 어성포에 왔다 가는 거지.” 동생은 여전히 아무 말 없고, 묵묵히 운전만 했다. 어제 장례식은 그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었나 보다. 우리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이모님의 장례식을 마치고 헤어졌다. 그에게 어제는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그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그와의 대화는 쉽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도착 다음에 또 보자, 오늘 고생많았다.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여보, 전화 왔네.” “응, 동생이네.” 아이고 철푸덕, 핸드폰은 콘크리트 바닥 위에 떨어지고 모서리와 뒷면은 여러 줄 금이 갔다. 나는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오랫만이다…… 그래, 큰일이구나. 네가 고생이 많다. 그래, 또 연락 주렴.” 여보, 도련님이야. “그래, 어머님이 쓰러지셔서 고대병원 응급실에 계신다는데, 면회는 할 수 없고, 그래서 다시 차도가 있으면 연락 달라 했어.” 동생의 전화를 받는 순간, 뭔가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전화를 받은 것이다. 그 불길한 예감은 나를 계속 따라다녔다. 어머니의 상태가 걱정되었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동생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불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지난번 갔던 그 바닷가 선착 장은 동생이 방학 때면 내려와 어머니와 함께한 추억의 장소였던 걸 어머니 장례식장에서야 알았다. 나는 동생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나누었을까? 우리는 서로의 삶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그 장소는 우리 가족의 추억이 깃든 곳이었다. 나는 그 장소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되돌아본다. 시간은 기억의 지움보다 빨리 흘러가나 보다. 얼마 큼의 시간이 우리를 서로 안다고 표현해줄까? 물비늘 살랑거림 속에 함께 했던 기억이 나와 동생이 가지 유일한 기억이라니, 이제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위해 나는 무엇 인가를 해야 한다. 형으로써 동생을 챙기며 살아가야 하는 데 우린 벌써 너무 멀리 와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 요즘하고 있는 글쓰기 시간을 통해서 라도 나는 동생을 만나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서로 알게 할 것이고 서로에게 다가 가게 할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개인사는 아픈 사랑같다. 어찌 하겠는 가?
피를 나는 형제도 만나던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면 남과 같다고 늘 할머니는 말씀하셨지, 살갑게 지내라고 그런데 살다보면 시간은 훅 지나간다. 어쩌다 만나면 할 이야기가 없어지니, 더욱 소원해지고 서로 바쁘다는 이유도 안부만 묻고 헤어지기가 다반사다. 그러 내 동생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는 과정은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그 속에서 나는 발견한다. 그리고 덤으로 우리 둘의 관계도 제자리에 놓을 수 있지 않을까? 그 훈련의 시간이 나와 나의 내면, 나와 동생이 만나는 순간일 것이다. 아직도 칭얼대는 어린아이는 내 안에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어서 써! 나도 자유로워지고 싶거든.” 하고 말하는 듯하다. 내 안의 어린아이는 나의 일부분이 듯 동생과 내가 안고 가야하는 무거운 과거 이야기다. 어떻게 치유하지,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힘들었던 시간을 보듬는 것이 벌어진 상처를 보듬어주는 것이리라.
언제나 빛나던 그 물 비늘은 오늘도 내 안에서 일렁인다. 평온함 속에서 나를 만나고, 어린 동생을 만나는 시간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대로 우린 다가올 날들을 따뜻하게 함께 맞이하자. 그것이 진정 내가 되는 것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되는 시간이다. 어린 나를 만나자, 어린 동생을 만나자. 그것이 우리의 치유 공간이고 시간이다. 글쓰는 과정 속에 만나는 나와 동생은 오늘도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감사합니다. ’60+’ 청춘 글쓰기 수강자.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인생의 초보자입니다.